[둘을잇는자전거] 렛츠고 광주, 518km

518광광라이딩. 광화문에서 광주518민주묘지까지.

 

1. 소개

‘둘을 잇는 자전거‘ (가칭) 두 번째 라이딩입니다. 말 그대로 역사적 사건이나 위인들과 관련된 장소 두 곳을 정하고 의미 있는 거리를 정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물이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했으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유용했을 텐데요. 누가 학교 다닐 때 배운 거 쓸모없다고 그랬나.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현재 부족한대로 하는 게 나아서 결행했습니다.

이번에 정한 두 지점은 광화문과 광주518민주묘지입니다. 부당한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다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광주518민주묘지와 부패한 허수아비정권을 유혈 충돌 한 번 없이 끌어내린 시민혁명의 장소 광화문입니다. 패악만 쌓여 적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사회운동과 민주화운동도 당장 실패하지만 쌓이고 퍼져서 결국 성공하게 만듭니다. 강물은 흘러 마침내 바다로 가듯이 지금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봉하마을에 다녀오고 나서 다음 예정으로 광광라이딩을 준비하던 중에 1980년 518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8월 초에 개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라이딩을 영화 개봉 전에 하는 것이 나을 지, 후에 하는 것이 나을 지 고민했지만 의미 없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기로 한 분들의 휴가 기간이 7월 말이어서 그 시기에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발일은 7월28일.금, 오전 6:30분,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

 

2. 준비 및 동료 모집

준비할 것은 경로를 만들었고 장거리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겼습니다. 저는 싯포스트에 부착하는 짐받이와 가방을 추가했습니다. 이 용품에 대한 사용기는 따로 쓸 것이지만 장거리를 조금 빠르게 가고자 하는 분들은 왜 저처럼 하지 않는지를 이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예비부품은 체인링크, 튜브, 타이어 정도였습니다. 타이어는 흔히 준비하지 않는데 여럿이 가다보니 문제 가능성이 높아져서 추가했습니다.

라이딩 취지에 동감하는 누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번에도 동료를 모집했습니다. 봉하마을 갈 때와 달리 좀 더 적극적으로 여기저기에 알렸습니다. 그래서 총 5명이 달리기로 했습니다. 세 분은 이미 장거리에 익숙하신 분들이고 한 분은 인증이 없을 뿐 가장 잘 타시는 분이었습니다. 저만 장거리 초보인 것이죠. 출발 전에 예비모임을 갖고 얼굴 익히고 경로, 준비물, 주행 방법에 대해 공유했습니다.

 

3. 출발

3-1. 첫째날

독일기자 위르겐 힌추페터처럼 택시로 가지 않고 우리는 자전거로 광주에 갑니다.

출발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를 검색합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네요. 그래도 출발시간에 지연이 있을지언정 비를 맞더라도 출발하기로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서로 연락하여 확인합니다. 첫 전철을 타고 광화문 가까운 역에 내립니다. 전철은 한산합니다. 광화문으로 가던 중 제 자전거 뒷바퀴가 펑크. 인도로 이동하여 튜브를 교체합니다. 비가 조금씩 내립니다. 교체 후 공기를 주입하다 보니 타이어 옆면에 구멍이 보입니다. 타이어가 오래 되어 삭은 것입니다. 바로 타이어까지 교체합니다. 이로 인해 20여 분 지체됩니다.

늦게 도착하여 세종대왕상 앞에서 사진 찍고 바로 출발합니다. 늦은 탓에 조금 서두르는 마음이 있습니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립니다.

청계천 옆 도로를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속도 내기도 어렵지만 신호등이 많기 때문입니다. 출발 장소를 다른 곳으로 하면 어떨까 했지만 라이딩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라 다음에도 감수하기로 합니다.

청계천 따라 중랑천을 만나고 한강에 다다릅니다. 한강 북쪽 자전거도로를 따라 갑니다. 미음나루고개(이 고개 명칭이 명확하지 않아서인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미음나루고개로 합니다.)는 뒷바퀴가 미끄러져 끌고 오릅니다. 내리막은 천천히.

능내역 가기 전에 오른쪽 길로 갑니다. 고개를 넘어가면 정약용 생가와 실학박물관이 있습니다. 보슬비가 장대비로 바뀝니다. 딱히 앉을 곳이 없어 우두커니 서서 비를 바라봅니다.

이러면 힘들어지는데. 그 곳에서 1시간30분가량 묶입니다. 비가 조금 잦아들자 비 맞으며 타기로 합니다. 빗속라이딩 모드로 전환합니다.

▲ 우비 아랫부분은 바지 틈에 끼워서 고정.

▲ 손목 부분은 바람에 펄럭이지 않도록 고무밴드로 고정

양말과 신발은 듬뿍 젖습니다.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짐받이와 가방 무게 때문에 댄싱도 잘 안 됩니다. 자전거가 리드미컬하게 좌우로 움직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거리 초보에게 짐 싸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예정보다 2시간이 지연되었기에 100km 정도 달린 거리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배고픔입니다. 위장병이 조금씩 나아지나 봅니다.

탄금대가 가까워오는데 마을길이 자전거도로입니다. 갈림길에서 멈추어 있으니 동네 할머니께서 탄금대 가는 길을 알려 주시네요. 몰라서 그런 게 아니고 흙탕물이 튀어서 일반도로를 탈까 고민하던 중인데. 할머니 말씀 안 듣고 도로를 탔다가 헤맸습니다. 이번에도 탄금대를 모르고 지나쳤네요. 신라시대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던데 어떠했기에 천 년 이상 전해지는지. 그 어떠함이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는 데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행동식을 살겸 강천보에서 휴식합니다. 편의점이 2층에 있습니다. 오늘 비가 오는데도 자전거 타는 이들이 많다고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이 말씀하시네요. 휴가기간이라 비가 와도 타나 봅니다. 저희들처럼.

강천보 건너편은 타고 내려가지 못합니다.

 

▲ 이 사진은 미음나루고개

어느 덧 190km를 달려왔습니다. 괴산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기로 합니다. 휴게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다니는 통로가 있습니다.

▲ 괴산휴게소 가는 길

▲ 양말 원래 색은 흰색

 

이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다음 일정을 논의합니다.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일단 속리산은 넘고 40km 쯤 더 가서 잠을 자기로 합니다. 여관이나 여인숙은 찾을 수 없어서 펜션에 전화를 합니다. 비용이 추가되지만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출발하려니 빗줄기가 더 굵어집니다. 그래도 달려야합니다. 하루 종일 지랄 맞게 오더니 펜션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우리의 라이딩은 멈추지 못합니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평지든 아주 천천히 진행합니다. 우비를 입지 않았다면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오르막을 오릅니다. 산은 빗물을 다 머금지 못하고 도로로 쏟아냅니다. 자동차가 다가오는 소리인지 물이 흐르는 소리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처음 겪는 상황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고 지금 당장은 조금 재밌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르막이 끝나지 않습니다. 꽤 깁니다. 장거리 타시는 분들 말로는 밤에 고라니가 불빛을 보고 달려들기도 한다는데 오늘은 비에 고라니도 차마 서성거리지 못하나 봅니다. 이 비를 어디서 피하고 있는 것인지.

고갯마루에 도착. 제수리재네요. 속리산입니다. 길가에 K.O.M. TDK 말뚝이 보입니다. 잠시 휴식 후에 이제 내리막길을 비처럼 쏟아지고 싶지만 10km/h 정도로 조심스레 내려갑니다. 아직도 길이 멉니다. 삼거리가 나오고 주유소가 있으면 왼쪽 직진. 그리고 경찰서. 경로는 벗어나지만 그곳에 잘 곳이 있습니다. 느리지만 하염없는 페달링은 계속됩니다. 40km 쯤 왔을 때 경찰서(?), 다시 보니 소방서네요. 문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고 있으니 야근하시는 분이 나오셔서 컴퓨터로 지도를 볼 수 있게 해주시네요. 화북119지역대입니다.

1km 안 되는 거리에 펜션이 있습니다. 드디어 도착. 3시간 반 정도 걸린 듯합니다. 주행거리 45km. 

오늘 총 주행거리는 230km.

펜션이나 주변에 먹을 것을 구할 곳이 없는데 치킨은 배달이 된답니다. 이제 닭이란 단어와 치킨이란 단어는 다른 의미로 쓰이죠. 치킨이란 말이 따로 고유명사처럼 되었죠. 비 맞은 자전거와 용품들 정리하고 씻는 동안 배달음식이 도착합니다. 모두 정리가 끝나고 나서 둘러 앉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합니다. 이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발하자. 단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러면서 모두 비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 방에 다섯 명이 잡니다.

 

3-2. 둘째날

새벽 4시에 알람이 울리고 한 명이 일어나 밖을 살핍니다. 제발~. 비가 오나 봅니다.

덕분에 푹 잡니다. 밝아진 다음에야 일어나 행동식으로 아침을 먹고 출발합니다. 다섯 명이다 보니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을 만납니다. 길지 않은 오르막이었는데 고갯마루에 다다르니 고개이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습니다. 거친 경사도의 이름 없는 고개.

아침은 보은군 산외면에서 할 생각으로 달립니다. 비가 온 다음날이고 하늘은 아직 구름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덥지 않고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입니다. 회전교차로에서 직진했다 멈춥니다. 경로에서 조금 벗어나야 산외면내입니다. 식당이 있을 면내로 들어갑니다.

시골에서는 경로 구성을 면내나 읍내를 관통하게 하는 것이 보급이나 휴식을 위해서 좋겠다는 의견을 주시네요. 동의가 되는 의견입니다.

▲ 타이어 옆면이 삭아서 생긴 구멍을 천원짜리를 집어 넣어 막음.

처음 일정은 1박2일이었는데 전날의 폭우로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중간에 복귀하셔야 합니다. 대전에서 버스를 타신다니 대청호까지는 같이 갈 수 있겠습니다. 대청호의 내리막길이 특히 시원합니다. 모퉁이 길의 회전반경이 커서 시야도 멀고 브레이크를 덜 잡아도 되니까요.

대청호 끝에서 일행이 둘로 나뉩니다. 귀가하시는 분들과 계속 달릴 분들.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각자 갈 곳으로 달립니다.

이제 옥천으로 향합니다. 이 길은 넓고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가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다른 우회 경로가 없습니다. 위험하다기보다 자동차소리 불편하신 분들은 잠시 참으셔야 합니다. 읍내 끝에서 매점을 발견하고 물과 먹을 것을 보급하며 잠시 휴식합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무주에서 먹자는 의견이 우세하여 지나칩니다. 저는 먹었어야 했지만 버틸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출발.

이제 무주로 향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왼쪽 아킬레스건 부위에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신호는 지난 밤 속리산의 제수리재를 오를 때 왔지만 무시할 만 했는데 이제는 페달링이 불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달려야할 거리는 200km 가까이 남았는데.

무주읍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약국에 들러 통증부위에 바를 약품을 샀습니다. 먹는 것이 효과가 좋다지만 지금 위장장애가 있는 상태라 바르는 제품으로 삽니다.

밥집을 나와 편의점에 들러 행동식을 삽니다. 각각 빵 하나, 에너지바 하나. 진안을 향해 갑니다. 아킬레스 부위는 여전히 불편합니다. 이름표 없는 작은 오르막길들이 이어집니다. 산을 깎아 신작로가 생기면서 옛길은 방치되고 있는데 그 길이 자전거타기는 안성맞춤입니다. 내리막길에 매점이 보여 멈춥니다. 저만 점심 먹는 시간이 늦어서 더 힘든 듯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날은 조금 어두워집니다. 야간라이딩 채비를 합니다. 밝은 후미등을 켜고 달립니다. 용담호 초입에서 다시 비를 만납니다. 종일 신고 입고 말렸던 신발과 옷이 몇 분 만에 다시 젖습니다. 이런~!

진안에 도착하여 저만 또 먹습니다. 제가 특히 에너지효율이 안 좋은가 봅니다. 아마도 채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안에서 한 분은 중단을 하십니다. 각자의 선택대로.

어쨌든 이제 둘이 되었습니다. 관촌면에서 가서 잠을 자기로 합니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추가됩니다. 무리하지 않고 GPS데이터만 얻기로 합니다. 진안읍을 벗어날 때 회전교차로에서 잠시 멈추어 지도를 확인합니다. 길 건너에서 우리를 보시던 노인께서 오시더니 길을 알려주십니다.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그래도 약주하신 듯하여 한 번 확인합니다. 여기부터 4km 정도 넓은 길에 자동차가 쌩쌩 지나가는데 다음에는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관촌면에 도착은 했는데 다리를 건너는 길을 못 찾아 잠시 헤맵니다. 또 비가 옵니다. 저녁은 인스턴트 라면에 밥을 말아서, 내일 아침은 인스턴트 국밥에 밥 하나 추가하여 먹기로 하고 편의점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산 후 여관을 찾아 들어갑니다.

아킬레스건 부위는 아프지만 누르면 아프지는 않습니다. 뭐지?

자기 전에 지난밤과 마찬가지로 일찍 출발하자고 다짐하고 잠이 듭니다. 하지만 충분히 자고 늦게 일어납니다.

 

3-3. 셋째날

이제 남은 거리는 100km 쯤.

걸을 때, 페달링 할 때 가끔 깜짝 놀랍니다. 아파서.

그래서 오른발 위주로 페달링을 하기로 하고 무리가 될 듯싶어 아프지 않은 오른쪽 무릎에 어제 산 약을 바릅니다. 그리고 왼쪽 장경인대에 작은 신호가 있어 무릎보호대를 찹니다. 양말과 신발은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젖어 있습니다.

여관을 나서려고 하자 장대비가 또 옵니다. 도대체! 다행히 땅만 흥건히 적셔 놓고 곧 멈춥니다. 이로써 3일 연속 비를 봅니다. 젖은 신발에 물이 좀 튄들 대수일까요!

옥정호가 멀지 않습니다. 날은 흐리고 덥지 않아서 자전거타기 좋습니다. 통증 때문에 댄싱이 봉인됩니다. 그러니 엉덩이가 아파옵니다. 낮은 오르막에서도 최저단으로 오릅니다. 그것도 모자라 오른쪽 무릎을 손으로 누릅니다. 어렸을 때 이렇게 타곤 했는데 이 순간에 생각이 납니다. 이후 급경사에서는 손으로 무릎을 눌러줍니다. 도움은 되네요.

옥정호를 왼쪽에 두고 달립니다. 옥정호는 1965년 섬진강댐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인공호수입니다. 옥정이란 이름은 마을이름인데 조선중기에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머지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옥정리라 하였다는데 사진사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된 것을 보면 예언이 맞았다고 봐야겠죠.

같이 가시는 분이 예전에 사진 찍으러 다니실 때 가끔 오셨다고 합니다.

옥정호를 끼고 도는 도로는 오르락내리락의 연속입니다. 길이 오르막이면 부담스럽고 내리막이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제껏 느리고 힘들어도 오르막이 좋았는데 혼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난 환자니까요.

고개 하나에 3~4킬로씩 줄여나갑니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긴 느낌. 왠지 더 얻은 듯한.

▲ 위 사진은 정읍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 10월초 구절초축제 사진.

옥정호 끝자락에 구절초테마공원이 있습니다. 구절초는 가을에 피는 꽃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없습니다. 정읍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올해 구절초 축제가 10.1~10.15 까지라고 합니다. 1주일 동안 개최되기도 했었는데 찾는 이들이 많은 것인지 2주간 열리네요.

 쌍치면에서 아침을 먹기로 합니다. 식당문은 열려 있는데 불러도 주인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식당으로. 어느 식당은 지금은 갈비탕만 된다고 하고. 음식을 가리니 번거로운 일이 가끔 생깁니다. 이 시골에서 사이클 혼자 타시는 분을 만납니다. 근처 도시에서 오신 모양입니다. 바로 적당한 식당을 찾습니다. 밥을 거의 먹었을 때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울에서부터 타고 왔다고 하니 밥 한 그릇을 더 주시네요. 배부른데... 거절할 수 없어 더 먹습니다. 잘 먹으니 이 장거리에도 몸무게가 줄지 않았고 같이 가신 분은 오히려 1kg이 늘었다고 하시네요. 

 

든든해진 배를 안장에 얹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한적한 길옆에 갑자기 사람들과 주차된 차량, 식당들이 나타납니다. 추월산이랍니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이 보입니다.

사진출처: 

http://hl2sej.tistory.com/entry/81-%EC%A0%84%EB%82%A8-%EB%8B%B4%EC%96%91-%EC%B6%94%EC%9B%94%EC%82%B0731m-%EB%8B%B4%EC%96%91%ED%98%B8%EC%99%80-%EB%B3%B4%EB%A6%AC%EC%95%942013720. 열음아비

 

느긋한 라이딩은 아닌 것이 내려서 쉬며 사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후기를 적는 지금은 사진을 찍어 올걸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왼쪽에 담양호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비가 많이 오지 않았는지 저수지마다 담수 수위가 낮습니다.

길은 전체적으로 약간 내리막이란 느낌이 듭니다. 2차선에 메타세쿼이어길이 나타납니다. 차량은 많지만 짧아서 경로에 넣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리를 건너 담양군 금성면내에 진입합니다.

휴식할 때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봉하마을 갈 때는 소화 장애가 해소되지 않았는데 이번 라이딩에서는 배고픔도 느끼고 아이스크림이나 찬 음료를 먹고 마셔도 불편함이 없네요.

영산강 자전거길이 담양호에서 시작합니다. 금성면부터 이 길을 따라 갑니다. 이 지역 자전거도로는 우레탄에 평탄도가 높지 않아 자전거타기가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아예 포장하지 않은 자전거길이 있습니다. 포장한 길보다 평탄도가 높고 모래 알갱이와 타이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건너편이 관방제림입니다. 이쪽보다 나무가 훨씬 크고 그늘도 넓고 짙습니다. 그리고 담양에서 전국 최초로 자전거우선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우선 통행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래도 보행자가 더 먼저죠.

담양 죽녹원 앞입니다. 저에게는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죠.

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영산강 자전거도로에 접어듭니다. 목적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아킬레스건 통증은 아랑곳없이 속도가 조금 빨라집니다. 변화가 적은 광활한 평지 길은 지겹습니다. 4대강 종주하시는 분들은 정말 멘탈 갑이십니다. 마주치는 자전거끼리 서로 인사합니다. 대도시가 아니라면 자연스레 이렇게 됩니다. 도심을 걸을 때 낯선 이들끼리 서로 말없이 스쳐지나가지만 지리산에 가면 서로 인사하며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고 보면 사람은 낯선 이에게도 서로 인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행동인가 봅니다.

이제 자전거 길에서 벗어납니다. 여기에서 518 구묘지 입구까지 3km 남짓. 봉하마을처럼 자전거도로에서 묘역까지 접근하는 안내판은 없네요.

드디어 도착. 매점 텔레비전에서 전국노래자랑 시상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후 1시15분.

백일홍이 화사합니다. 신묘역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우선 지친 몸을 쉬고 정신을 수습하기 위해 세수하고 정자에 눕습니다. 당연히 아이스크림도 먹어야죠.

▲ 구묘역

▲ 신묘역

 

4. 마무리

제가 518에 대해 처음 듣게 된 것이 1986년도입니다. 고등학교 때 하숙집 옆방 선배의 아버지가 장성이셨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같은 방을 쓰던 친구는 특전사에서 복무를 하던 형이 당시 광주에 투입되어서 형으로부터 일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들었어도 잘 몰랐습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그냥 오래된 사건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때보다 더 오래된 지금은 오히려 더 가까워졌습니다. 부당하게 권력을 찬탈하고 탐욕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서슴없이 죽이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그 권력에 빌붙어 사리사욕을 채우며 겉으로는 국가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부역하던 자들,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이익이 되지도 않는데 그저 강자 편을 드는 토테미즘 사고를 가진 자들, 그리고 자기 이익만 침해되지 않으면 부당하고 잔악함에 관심 없는 자들. 이런 자들의 총합이 낳은 것이 시민학살이겠죠.

아래의 글은 나치가 반대세력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을 보면서도 침묵하는 지식인들을 향해 날렸던 마틴 니묄러의 연설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1980년 5월18에 우리가 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30여년 지난, 한 세대가 바뀐 2016년은 달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유족의 아픔을 몇 년 간 같이 했고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고 더 커져만 갔습니다. 1980년에는 부당한 독재 권력에 맞서 죽임을 당하고 실패했지만 2016년에는 부패한 농단권력에 맞서 그 권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 하였는가라고 봅니다. 당장 이익이 침해되고 번거롭고 두려워도 잘못한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행동하는 양심이 모여야 비로소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지금 나의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더 나아질 것입니다.

 

같이 갔던 분께서는 이곳에 가끔 오신다고 하십니다. 구묘역에 들러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십니다. 삶이 힘들 때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다고 하시네요.

폭우 속에서의 거친 라이딩, 아킬레스건의 통증 등 일상에서의 불편함은 대개 일시적이며 회복 가능한 고통이고 심지어 그걸 알기에 즐기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518이나 416 같은 되돌릴 수 없는 아픔은 누군가에게는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의 원인이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체념도 쉽지 않아 더욱 힘든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나마의 위로는 사고조사를 철저히 하고 관련자들에게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일텐데 그게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네요. 

그리움은 미소짓게 하지만 그러다가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절절한 안타까움, 죽음 앞에 내몰린 사랑하는 이의 두려움과 고통을 문득문득 느끼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심정을 똑같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알겠습니다.

신묘역 추모관에 써 있는 유명한 글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518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억하고, 2016년의 시민혁명은 권력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그 날의 의미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죠. 이번 광광라이딩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5월18일 즈음에 갑니다. 그나저나 아킬레스건은 언제 나을지.

 

● 이번 장거리 라이딩은 내가 초보임을 알 수 있었다. 뒷짐받이에 가방을 올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핸들바쪽에도 짐을 나누어 자전거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이외의 네 분은 모두 그렇게 짐을 매달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 떠나기 전에 자전거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어야했다. 타이어는 옆이 삭아서 펑크가 나고 가지고 간 예비부품도 중고를 가져갔는데 하필 그 부품도 문제가 있었다.

● 다른 네 분으로부터 각자의 노하우를 알 수 있게 되었지만 내가 전부를 실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냥 그 분들과 같이 다니는 것도 방법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