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후기

아! 180km

nuegocci 2016. 8. 11. 01:12

▲ 그 때 탔던 자전거. 몇 군데가 사진과 달랐고 지금은 더 다르게 아직 타고 있다.


2004.05.31


5월 29일,

회원 한 분의 공방에 가 회원 여럿이 대대적으로 도로용 타이어로 교체했다.

내일 모레 있을 장거리 주행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일찍 잠이 들었다.


출발일, 5시에 눈을 떴다.

외부 자극(자명종..) 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긴장했는지 이후로 여러 번 잠이 깨었다.

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6시 25분. 늦었다!

부리나케 준비하고 아침은 꼭 먹어야겠기에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 2개에 튀김우동 1 개를 먹었다.

인덕원에 있는 편의점에서 먹었는데 밤새 술 마신 이들이 거리에 아직 남아 있었다.

늦어서 조금 마음이 급하다.

출발 장소에 도착.

어! 문도 안 열려 있고 아무도 없다.

시간과 장소를 잘못 알고 있나?

다시 기억을 되뇌어 보지만 맞는데 하면서 시간을 확인한다.

이런! 6시 10분. 시계를 잘못 봤네.

(나와 같은 분이 한 분 더 계셨다.)

한 바퀴 돌 요량으로 공방을 떠나는데 공방의 주인께서 멋지게 등장하신다.

서로 낯선 이들이 여럿 모이기 시작한다. 모두 아홉.

그렇게 30분 정도를 기다렸나.

기다림도 허탈하게 이후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출발.


인덕원을 지난다.

과천 경마장을 돌아간다. 처음 와 보는 길이다.

처음 가는 길은 신선하다. 다음에 혼자 와 봐야지.

양재 IC 옆을 지난다.

이 길은 작년에 유사산악차로 출퇴근을 잠깐 하던 길이다.

그 때는 인도로 다녔는데 이제는 도로로 차랑 같이 달린다.

올림픽공원을 지난다. 이후로는 잘 모른다. 그저 앞 사람을 따라갈 뿐이다.

팔당대교가 나타난다. 당연히 건넌다. 청수정에서 잠시 휴식한다.

앞서 온 싸이클 무리가 휴식하고 있었다.

일행 가운데 한 분께서 한마디 하신다.

"빨리 왔네요!"

그런가 보다.

가져 온 먹을 것을 펴 놓고 에너지 보충 후에 다시 출발.

난 여전히 맨 꼴찌.

어차피 돌아가는 시간은 똑같다는 느긋한 생각으로 천천히 여유 있게.

주변도 둘러보며 패달링한다.

앞에 팔당댐이 보인다.

바로 앞에 가시던 분께서 안장 높이를 조절한다고 잠시 멈춘다.

나와 다른 한 분도 구실 삼아 휴식.

팔당댐을 건너가는 자전거 2대가 보인다. 우리 일행 같은데. 앞서 간 사이클 무리인가?

앞서 달리던 분께서 이 길이 맞는지 물어 본다.

맞다고 하시는데 이상한데!

쫓아가서 확인해 보고 싶지만 나도 초행인지라

사이클 무리이겠거니 하고 가던 길을 따라간다.

먼저 가셨던 분들이 기다리신다. 그런데 인원이 모자라다.

번짱님이 안 보이는 분과 통화 후 되돌아가서 길 잃은 두 분을 데려 오신다.


강의 오른쪽 길을 따라간다. 북한강인가?

차도 별로 없고 한산한 편이다.

난 여전히 뒤에서 설렁설렁 패달질이다. 맨 꼴찌.

갑자기 길 옆에 누워 있는 분이 보인다. 쥐란다.

바로 내 앞에 가시던 분께서 근육 풀어 주시고 먼저 출발하신다.

이제 쥐 내렸던 분과 일행이 된다.

길이 오르막이면 그 분의 다리에는 여지없이 쥐가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네!

오르막길이다. 앞서 가던 분께서 내리신다.

난 그냥 냅다 올라간다. 모퉁이를 도니 열심히 오르시는 먼저 가셨던 분이 보인다.

고갯마루에 올라 잠시 휴식한다.

함께 올랐던 분께서는 먼저 내려가시고 나는 뒤에 오시는 한 분을 기다린다.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내려가 보니 끌고 올라오신다.

그 분의 가방을 내 가방에 넣고 같이 끌고 오른다.

그렇게 꾸역꾸역 가다 보니 앞서 간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쥐 내렸다는 소리를 듣고 이후에는 방장님께서 뒤쳐진 분과 함께 가신다.

방장님이 옆에서 끊임없이 패달링에 대해 말씀을 하시며 독려하신다.

그 분도 이에 부응한다.

나는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방장님은 할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실력이고 경륜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청평대교를 지난다. 익숙한 길이다.

작년에 상가를 다녀가느라 왔던 길이다.

참새 한 마리가 도로에 나와 자전거가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날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솔고개에서 잠시 휴식한다.

솔고개 내려가면 작년의 그 상가이다.

설악면 내에서 점심을 먹기 전에 전화 한 통.

"나 지금 니네 동네 와 있다. 오다 보니 여기다."

졸린 목소리더니 자기 동네라는 말에 목소리가 밝아진다.

점심 빵빵하게 먹고 다시 출발.

( 참고로 광진식당. ...순두부전문인데 앞에 ...은 고기 종류인데

선택적 기억으로 인해 안 먹는 건 기억 안 하나?)

나는 이제 꼴찌가 아니다. 쥐가 자주 내리던 분이 뒤쳐진다.

다른 분께서 같이 가신다길래 나는 내 페이스대로 달린다..


유명산이 앞에 있다.

방장님은 투지를 불사르라는 건지 각오하라는 건지 겁을 좀 주신다.

본격적 오르막이 시작된다.

방장님 앞으로 치고 나가신다. 역동적이다.

그 뒤를 독립군님, 다야몬드님, 나,

그리고 또 한 분 (선택적 기억이 아니라 일시적 기억 상실인 듯)

앞서 오르셨던 방장님이 되돌아 내려가신다.

난 그저 패달링과 호흡에 신경 쓴다.

경사는 급하지 않은데 생각만큼 나가지 않는다.

얼마 올라오지 않은 것 같은데 아래가 조금 아득하다.

공사 중인 비포장 길이 나온다.

지나가는 차가 먼지를 일으킨다. 숨이 참데도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쉰다.

자갈이 바퀴에 밀린다.

멋진 중형 오토바이가 여러 대 지나간다.

대충 산을 보니 정상이 멀지 않은 듯하다.

드디어 앞에 포장마차가 보인다. 정상인가 보다.

듣던 것보다 짧았다.

세수하고 휴식한다. 이후 독립군님, 다야몬드님....속속 도착하신다.

걸쭉한 잣막걸리 한 잔에 김치 한 조각, 그리고 오징어포.

더 이상 바라는 거 욕심이다. 더할 나위 없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모두 빨리 올라오는 것 하나.

오토바이도 멋있고 타는 이들도 멋있고, 다만 좀 조용했으면.


이제부터 10km 내리막길.

내리막에서 체온 유지를 위해 자켓을 다시 걸친다.

탑맨님 저번 공동묘지 길에서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없이 잘 내려가신다.

따라 내려간다. 손목이 아프다.

이후로는 오르막길이랄 게 없어 크게 뒤처지는 이 없이 순항한다.

큰 길이 나타나고 차들도 많다. 막힌 차들 옆으로 자전거는 달려간다.

앞에 싸이클 무리가 나타난다.

제치고 달려 나간다. 탄력을 받았나보다.

최고기어비로 놓았는데도 갈 만하다.

잠시 휴식. 다들 금방 도착한다. 다시 출발.

긴 다리 하나를 지나서 휴식한다.

자전거를 건물에 기대어 세워 두니 검문하는 경찰이 와서 그러지 말란다.

사이클 무리도 휴식하고 있다.

다시 다 모였다.

다음 쉴 곳은 아침에 쉬었던 청수정이란다.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기로 한다.


방장님 앞서 가시고 난 바로 뒤에 붙는다.

아침에는 후미에서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선두권에서 달리고 있다.

작은 오르막에서 갑자기 역동적인 패달링을 하신다.

덩달아 나도 쫓는다. 숨이 가빠진다.

오르막이 없길 바라지만 아침에 올 때 작은 내리막이 있었다.

저길 어떻게 쫓아가나 하면서 가다 보니 뒤쳐지지 않고 있다.

더더욱 힘들어진다. 그래도 이후에는 오르막 없다.

그런데 나에게만 없는 게 아니었다. 가까스로 뒤쳐지지 않고 청수정에 도착한다.

무리했다. 괜히 쫓아왔다. 천천히 올 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시 저마다의 가방에서 먹을 것을 펼쳐 놓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난 안 먹는다니까 방장님이 물 비슷한 것을 사다 주신다. 아주 차다.

그것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먹고 말았다.

그것도 홀짝홀짝하다가 한 병 다 마셨다. 춥다.

지나가는 사이클 무리에서 손을 흔들고 지나가시는 분이 있다.

우리도 다시 출발.


어디서부터였던가?

방장님, 독립군님, 나. 이렇게 셋이 신호빨 받으며 갈 때가.

뒤 따라가면서 제발 신호에 걸려라 마음속으로 외쳐보지만 방장님은 이미 신호등의

타이밍을 알고 있는 듯하다. 야속한 신호등이다.

방장님 지나고 독립군님 통과하고 난 걸린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다.

에너지 거의 고갈이다. 긴팔져지에 긴자켓인데 덥지도 않다.

휴식을 하는데도 회복이 안 된다.


경마장 길을 돌아 한적한 산길을 따라 아침에 출발했던 공방으로 돌아왔다.

13시간만인가.

일행 중 한 분께서 수박과 음료수를 사셨다.

나머지 8명은 감자탕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인사하고 이제 각자 집으로...

당분간 자전거 열심히 탈 생각이 안 날 것 같다. 너무 힘들다.

자전거를 왜 이렇게 타나 싶다.

오늘 하루 종일 겨울 잠바까지 긴 옷 세 개를 껴입고 있다.


으~~! 180km. -_-